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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문화·생활 탐구

농번기의 새참 문화 – 함께 일하고 함께 먹던 시간

농번기 시절의 새참 문화는 단순한 간식 시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수고를 위로하고 나누던 삶의 풍경이었습니다. 막걸리, 수박, 보리개떡이 담긴 새참 바구니와 품앗이의 따뜻한 기억을 통해 사라져가는 농촌의 정을 돌아봅니다.

 

 

농촌의 여름과 가을은 언제나 바빴습니다. 모내기와 추수철이 되면 온 마을이 들판에 나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구슬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고된 노동의 한가운데에도 작은 기쁨과 휴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새참이었습니다. 새참은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간식이 아니라, 노동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자 공동체의 연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짧은 휴식 속에서 사람들은 웃음을 나누고, 정을 쌓으며,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새참 바구니의 풍경

새참 시간이 가까워지면, 들판의 공기는 묘한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한쪽에서 보자기를 이고 오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보이기만 해도, 밭에서 허리를 굽히던 농부들의 손길이 자연스레 멈추곤 했습니다. 알록달록한 보자기에 싸인 새참 바구니는 단순한 음식 꾸러미가 아니라, 고단한 노동을 잠시 멈추게 하는 작은 축제의 신호였습니다.

 

바구니를 펼치면 그 안에서 풍경이 피어났습니다. 잘 익은 수박은 시원한 초록 껍질을 갈라내면 붉은 속살이 드러났고, 검은 씨앗이 촘촘히 박힌 모습은 여름 들녘의 또 다른 색채처럼 빛났습니다. 수박 한 조각을 입에 물면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번졌고, 땀으로 지친 농부들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뙤약볕 아래의 고단함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옆에는 보리개떡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보릿가루 특유의 고소함과 쫄깃한 식감은 속을 든든히 채워주었고, 소박하지만 깊은 맛은 늘 농촌 사람들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삶은 감자나 옥수수도 함께 담겨 있었는데, 감자를 쪼개 입에 넣으면 포슬포슬한 식감과 은은한 단맛이 퍼졌습니다. 옥수수 알갱이를 톡톡 씹을 때 나는 소리와 구수한 향은 아이들에게는 놀이처럼 즐거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 한 병이었습니다. 흰 사발에 따라낸 막걸리는 농부들의 갈증을 단번에 풀어주었고, 달큰한 맛은 노동의 피로를 씻어내는 또 하나의 보상이었습니다. 한 사발을 기울인 어른들은이 맛에 농사짓지라며 웃곤 했습니다.

 

새참 바구니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집안의 정성과 공동체의 사랑을 담은 상징이었습니다. 새벽녘부터 밭일에 나선 가족을 위해 아낙네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챙기는 손길에는오늘도 무사히 힘내라는 응원의 마음이 스며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달콤한 수박 한 조각이 여름방학의 기억을 만들었고, 어른들에게는 막걸리 한 사발이 연대와 우정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새참 바구니가 펼쳐지는 순간, 논과 밭은 더 이상 고된 노동의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땀에 젖은 옷을 훌훌 털고 둘러앉아 나누는 음식은 들녘을 임시 잔치마당으로 바꾸었고, 그 짧은 시간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 이어주는 소중한 쉼표가 되었습니다.

 

농번기의 새참 문화 – 함께 일하고 함께 먹던 시간

 

막걸리 한 사발과 웃음소리

새참 자리의 중심에는 언제나 막걸리 한 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막걸리를 사발에 따라 목을 축이는 순간, 땀에 절어 있던 몸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지요. 땡볕 아래에서 허리 굽혀 김을 매고,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내릴 때, 막걸리의 시원한 목넘김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노동을 견디게 하는 약수 같은 존재였습니다.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킨 농부들은이제 반은 끝났다!”라며 호탕한 농담을 던지곤 했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지친 이웃에게 건네는 격려와 위로의 언어였습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논두렁을 타고 멀리 퍼져 나가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순간에 고단함을 잊었습니다.

 

아이들도 새참 자리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막걸리는 어른들의 몫이었지만, 아이들은 옆에서 수박 조각을 물고 씩 웃으며 뛰어다녔습니다. 어른들이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며 나누는 이야기는 농사일의 노하우, 날씨와 계절의 징후, 그리고 마을의 경사와 근심이 뒤섞인 생활의 정보 교환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농촌의 지혜와 공동체의 언어를 귀동냥으로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때로는 막걸리 한 잔이 삶의 희로애락을 풀어내는 매개가 되기도 했습니다. 풍년의 기쁨을 노래하듯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고, 흉작에 대한 걱정이나 집안의 사정을 한숨 섞어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새참 자리는 무겁기만 한 대화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그래도 해가 다시 뜨면 또 해 보자라는 긍정이 남았고, 그것이 농촌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결국 새참 자리의 막걸리 한 사발은 단순한 술잔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공동의 땀방울을 함께 인정하는 화해의 잔, 서로의 노고를 기리는 존중의 잔, 그리고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하는 위로의 잔이었습니다. 그 잔이 오가던 순간, 들판은 단순한 노동의 현장이 아니라 웃음과 연대의 마당으로 변했습니다.

 

 

품앗이와 수고비의 의미

새참은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는 음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노동을 인정하고 위로하는 상징이었습니다. 농번기에는품앗이라 불리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우리 집 논에 이웃들이 모여 김을 매고, 내일은 저 집 밭에 모두가 모여 모내기를 돕는 식이었지요. 이 품앗이 문화 속에서 새참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서로의 수고에 대한 감사와 존중을 표현하는 수고비였습니다.

 

새참을 준비하는 손길은 언제나 정성스러웠습니다. 어머니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가마솥에 감자를 삶고, 보리개떡을 쪄내고, 막걸리를 준비했습니다. 때로는 닭을 잡아 국을 끓여내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 집 논 도와주셨으니, 새참은 든든하게 드셔야지요.”라는 말 속에는, 단순히 배를 채워주려는 마음을 넘어 함께 고생해 준 이웃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품앗이는 그 자체로 돈이 오가지 않는 노동 교환이었지만, 새참은 일종의 정서적 보상이자 공동체 윤리의 실천이었습니다. 이웃의 땀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 오늘의 도움을 내일 반드시 되돌려주겠다는 약속이 새참 바구니에 함께 담겼던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농사일이 힘들어도저녁에는 내 집에서도 새참을 대접해야지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이웃의 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웃 간에 오가는 말 속에는 언제나 유머와 격려가 가득했습니다. “네 집 막걸리가 내 집 막걸리보다 더 시원하다는 농담이 오가기도 했고, “내일은 우리 집 차례니 더 푸짐하게 준비할게라는 다짐이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새참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 소유가 아니라 나눔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만들어갔습니다.

 

아이들 또한 이 풍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새참 바구니를 함께 들고 들판으로 나르며, 어른들이 일손을 돕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이웃이 곧 가족이다라는 공동체의 가르침을 새참 자리에서 몸으로 익혔던 것입니다.

 

결국 새참은 노동의 땀방울을 닦아주는 작은 보상이었지만, 동시에 마을 전체를 지탱하는 윤리와 신뢰의 매개체였습니다. 밥상 하나에도 협동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고, 새참을 나누는 행위는 곧 공동체의 끈을 더욱 단단히 묶는 의식이었습니다.

 

 

사라져가는 풍경과 그리움

오늘날 농촌의 풍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한때 논두렁과 밭두렁을 가득 채우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새참 바구니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농기계가 대부분의 일을 대신하고, 농번기 인력은 외부에서 고용되는 인부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마을 전체가 품앗이로 모여 일하던 전통적인 새참 문화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들판 한가운데에 모여 앉아 막걸리 사발을 돌리고, 보리개떡을 나누던 모습은 이제 사진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새참이 사라진 배경에는 단순한 기술 발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 생활의 해체, 농촌 인구의 감소, 핵가족화와 같은 사회적 변화도 큰 몫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서로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겼지만, 이제는 개인의 농사와 생계가 우선되는 시대가 되었지요. 따라서 새참은 더 이상 일상의 필요가 아닌, 과거의 풍습으로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참의 기억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깊은 향수와 그리움을 불러일으킵니다. 막걸리의 톡 쏘는 맛, 갓 쪄낸 보리개떡의 촉촉한 식감, 한여름 들판에서 수박 한 조각을 베어 물던 시원함... 이런 감각의 기억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곧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땀을 나누고, 수고를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던 따뜻한 공동체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대에 따라 새참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노년 세대에게 새참은 고단했던 노동의 기억이면서도, 그 안에서 발견한 삶의 기쁨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입니다. 중년 세대에게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들판에 앉아 먹던 간식의 향수로 남아 있고, 젊은 세대에게는 이야기 속에서만 접하는 아련한 전통의 풍경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새참의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풍경을 그리워하는 감정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의 문화를 환기시킵니다.

 

비록 지금은 들판에서 새참 바구니를 보기 어렵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전통 행사나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이 문화를 다시 되살리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가 잃어버린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번기의 새참 문화는 그저 밭에서 먹던 간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웃음을 나누고, 연대를 확인하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비록 오늘날 그 풍경은 많이 사라졌지만, 막걸리 한 사발과 수박 한 조각에 담긴 정은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새참은 농촌 공동체가 지녔던 서로 돕고 함께 사는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는 상징이며,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생활문화입니다.